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오야 시즈카 (문단 편집) === 고난 === 2007년 5월 'AKB48 4기 연구생 오디션'에 합격 된 후, 2009년 8월에 팀 A 정규멤버로 승격하게 되는데, 실제로 '''2년 4개월'''이라는 최장 연구생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. [* 2014년 4월, SKE 4기 연구생 [[이누즈카 아사나]]가 3년 6개월로 기록이 깨졌다. 현재 최장 연구생 기록은 SKE 3기 [[마츠무라 카오리]]가 갖고 있으며, 무려 5년 4개월의 연구생 기간을 거쳤다. AKB48 기준으로는 16기 [[쿠로스 하루카]], [[사토 미나미]], [[미치에다 사키]], [[혼마 마이]]가 2019년 5월 오오야의 최장 연구생 기록을 갱신하였으나, 2019년 5월 13일 [[쿠로스 하루카]]가 승격하고 같은해 9월 12일 [[사토 미나미]]와 [[미치에다 사키]]가 1008일 만에 승격해 기록을 경신했다. 이후 2020년 12월 8일 [[혼마 마이]]가 1461일 만에 승격, 또 한 번 최장기간 연구생 기록을 갈아치웠다.] 참고로 4기생의 동기중에 제일 먼저 승격한 [[사에키 미카]]는 2008년 2월에 승격했으며, 오오야는 4기생 동기가 승격하고 자신이 직접 춤을 가르쳤던, 5기와 6기의 일부 멤버에게도 늦어져, '''7기생과 같은 타이밍의 승격'''을 하였다. 그래서 지금도 팬들 중에는 오오야를 7기생의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. 이렇게 승격이 늦었기 때문에, 동기인 [[쿠라모치 아스카]][* 명예 2기생]에게 오디션을 합격하고 3년 간은 존댓말로 대화를 했다고 한다. 오오야는 4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4기와 5기의 멤버에게는 평범히 반말로 이야기하는데, 초기의 [[블로그]]에는 4기와 5기생에게 ''''왜 선배에게 반말이야?''''라는 충격적인 코멘트가 달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. 이는 오오야가 승격이 늦어서 팬들에게 6~7기의 인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오야가 후배들에게 존댓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오오야에게 반말을 하는 후배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. 게다가 본인은 선배들에게는 반듯하게 존댓말을 사용해서 이러한 오해는 깊어지기만 했다. [* 아직도 1기생 미네기시(미네기시가 연하)와 현역 3기생 카시와기(동갑)에게는 평범하게 존댓말로 대화한다.] 본인이 3년동안이나 힘든 연구생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해왔던 이유는 4기 오디션에서 떨어진 사람들의 몫까지 열심히 해야겠다는 것, 그리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1명이라도 있는 동안에는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정한 것, 꼭 하고 싶은게 있었던 것, 지기 싫은 성격인 것 등을 뽑고 있다. 당시로써는 오오야에게 [[AKB48]]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'''도박'''이었고, 죽을 각오로 임해왔다고. 2009년 1월, 당시 연구생에 대해 처음으로 '셀렉션 심사'[* 연구생을 대상으로 한 AKB48로써의 자질이 없는 멤버를 해고시키는 심사. 하지만 사실상 인기가 없거나 문제가 생긴 연구생들 정리해고이다.]를 시작했다. 사실 운영 측은 오오야 시즈카를 극장에서 실컷 써먹고 이 시점에서 해고시킬 생각이었다. 셀렉션 심사 중에 우연히 1기 오리멘인 [[코지마 하루나]]와 [[시노다 마리코]]가 극장에 있어서 사정을 듣고 운영 측에 '''오오야는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절대로 탈락시키지 말아주세요'''라고 말했다. 운영 측은 그 말을 듣고는 최종적으로 '오오야는 해고시키면 안 되겠다'고 생각하여 해고를 면하게 되었다. 오오야는 우연히 극장에 있던 그들의 말 한 마디로 인하여, 기적적으로 남게 되었다. [* 나중에서야 코지마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인 것 밖에 없고 오오야를 구하는 데에 적극적이었던건 시노다였다고 고백했다. ] 하지만 오오야는 승격을 하게 된 이후로, 더 큰 고난에 직면하게 된다. 연구생 때는 그나마 많은 극장 공연에서 언더라도 설 수 있어서 극장에서라도 인기가 있었지만, 정규 멤버가 되고 난 후 극장공연의 일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. 미디어 노출도 별로 없어서 그야말로 진퇴양난. 힘들게 정규 멤버까지 올라왔는데 [[병풍]]이 되어가고 있었다. 그런 오오야의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[[TV도쿄]]의 '주간 AKB' [[http://jp.channel.pandora.tv/channel/video.ptv?c1=&ch_userid=hmiajjunda&prgid=48444978|오오야 시즈카의 고뇌편이었다.]] 이 편에서 악수회에서 팬들이 없어서 눈물을 흘리는 등 오오야 시즈카의 상황이 소개되어서 많은 화제가 되었다. (2018년 인터뷰에서 여전히 이 때의 주간 AKB를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람이 악수회에 와준다고 전했다.) 이 후 오오야는 재조명되었고, 2011년 1월부터 소속사가 오오야를 슬슬 밀어주게된다. 어느정도의 상승폭이었냐면 당시 악수회가 18부가 맥스일 때, 오오야는 7.7부 배정에 완매부수가 1부도 없었는데 이 주간 AKB편이 나가고 나서 18/18을 완매하는 괴력을 보여준다. 23th~26th 까지 전부 완매였다. 미디어 노출이 많아지면서 정말로 바닥을 쳤던 인기가 오른다. 3회 총선거에서 29위로 언더걸스에 진입하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